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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개와 독립적인 고양이

개와 고양이, 그들은 단순한 털복숭이가 아닙니다. 그 마음과 눈 속에 뭐가 담겨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성격도 같은 듯하면서 크게 다릅니다. 개는 매사에 열정적입니다. 반면 고양이는 자존심이 강하고 독립적입니다. 그 바람에 이 두 친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앙숙으로 불리웁니다. 

 

열정적인 개와 독립적인 고양이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에 보면, 가난한 어부가 잉어를 낚았다가 다시 놓아주었는데 그 대가로 용왕에게서 여의주를 얻었다고 합니다. 착한 어부는 그 때문에 부자가 되었는데 이웃에 사는 심술쟁이 노파가 이를 훔쳐가는 바람에 다시 가난뱅이가 되었습니다.

 

이때 어부가 기르던 개와 고양이가 힘을 합해 여의주를 찾아 나섰습니다. 고양이가 노파 집 쥐를 협박해서 구슬을 빼앗아 왔습니다. 이 구슬을 물고 강을 건너다가 구슬을 빠뜨리게 되었는데, 개는 체념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린 반면 고양이는 끈질기게 찾아다녀 마침내 주인에게 구슬을 갖다 바치게 됩니다. 그날 이후부터 고양이는 방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개는 방 밖에서 밥찌꺼기만 먹게 되다 보니 앙숙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정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의 화신이라고 하여 고양이의 학대가 심했습니다. 마녀의 고양이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하여 사나운 개와 대치를 시켰습니다. 사나운 개가 덤비면 마녀의 고양이로, 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고양이라고 했다 합니다. 

 

그러나 개의 열정적인 성격과 고양이의 쿨한 극단적인 두 성격은 의외호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요즘 개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는 집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실제 대부분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두 동물은 오랜 친구처럼 잘 지냅니다.

 

개와 고양이는 같은 조상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진화의 수레바퀴 속에서 개와 고양이는 같은 조상을 가진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신생대 제 4기, 지금으로부터 약 3천 5백만년전 미아시스(Miacis)라고 이름 붙여진 소형 육식동물이 지구상에 존재했었습니다. 족제비나 사향고양이를 닮은 길고 늘씬한 몸을으로 사냥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이시스는 미국 너구리과, 곰과, 견과, 족제비과, 자코고양이과, 하이에나과, 고양이과로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이시스의 일부는 숲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다른 일부는 탁 트인 초원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숲속에 남아 있던 무리들은 고양이과로, 초원으로 진출한 무리는 개과로 진화하게 됩니다.

 

숲속에서는 낙옆을 밟는 조그만 소리나 기척도 사냥의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사냥감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접근에서 단숨에 잡아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단독으로 사냥할 수 밖에 없도록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탁 트인 초원에서는 몸을 숨길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것이 보다 유리했을 것입니다. 개와 고양이의 신체를 보면 이런 선조들의 특성을 고스란히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개와 고양이는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을 줄 압니다

개는 얼굴 표정이 다양하고 풍부합니다. 이것은 집단생활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상대에게 의사나 심리상태를 전달하기 위해 꼬리나 귀, 얼굴의 각도, 표정, 음성 등을 조합하여 다양하게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집단생활에서 보다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의사나 심리상태를 재빨리 읽어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복종이나 역할분담 등에도 익숙하게 진화했습니다.

 

반면, 고양이는 사람에게 의사를 표현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고양이에게 오랬동안 주어진 역할은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인간에게 해로운 쥐를 잡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때문에 혼자만의 독특한 표정, 야생 동물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무심한 듯한 표정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개가 원시 인간사회에서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것은 사냥에서 조수 역할을 훌륭히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보다 훨씬 빨리 달릴 뿐 아니라 청각과 후각이 뛰어난 데다가 무엇보다도 충성심이 강해 사람을 따르고 기쁘게 해주려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영리함으로 따지자면 개가 돼지보다 뒤진다는 연구결과가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함께 한다는 사실로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은 개가 거의 유일합니다. 물론 간혹 고양이도 그런 행봉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각인되어 있는 플란다스의 개

개와 사람이 사는 모습은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통해 묘사되어 왔고 드러나 있습니다. 어릴적 추억의 한 끝에 혹시 플란다스의 개를 기억하시나요? 

 

영국의 여류작가 위다(Ouida)의 작품 '플란다스의 개'는, 1872년 출판된 이래 세상의 수많은 어린이들을 울려온 이야기입니다. 플란다스 지방의 한 마을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소년 네루토는 어느 추은 겨울 날 포악한 술주정꾼 주인에게서 버림받아 빈사상태에 빠져 있던 늙은 개 파트라슈를 집에 데려옵니다. 소년과 이 개는 매일 아침 우유배달 수레를 끌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삽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이 소년은 그러나 할아버지가 죽은 뒤 개와 함께 마을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끝내는 그가 동경해온 루벤스 그림 아래에서 개를 껴안은 채 얼어 죽습니다.

 

혹시 이 이야기를 보면서 어릴 때 '사람들은 매정하다. 가난한 아이를 굶어서 얼어 죽게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개는 의리가 있다. 도망 가서 잘 살 수도 있는데 주인의 곁을 끝까지 지킨다' 라고 생각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돌아온 래시'에 나온 콜리, '귀여운 조리'의 그레이트 피레니즈, 진돗개, 백구, 어린 시절 같이 놀아주던 이름없는 강아지나 발바리까지. 사람들의 기억에는 수 많은 개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심지어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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